개인적으로 청소년 소설을 좋아합니다. 인물들이 입체적이며 에너지가 넘치고, 개성이 뚜렷하다고 할까요? 확실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들과 생생한 장면들의 연속이라서 몰입하기가 좋아요.
"파랑 채집가"는 로이스 로리 작가의 저서입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특유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이 있는데요. 사실 파랑 채집가는 "기억 전달자"의 스핀 오프 작품입니다.
파랑 채집가 외에도 2권의 스핀오프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게 됩니다.
1. 기억 전달자
2. 파랑 채집가
3. 메신저
4. 태양의 아들
리뷰 순서는 파랑 채집가가 먼저이지만, 순서에 맞도록 기억 전달자를 먼저 읽었습니다. (언젠간 후기 남기겠지만) 전 개인적으론 기억 전달자가 좀 더 재밌었습니다. 기억 전달자는 초반이 좀 힘든데, 숨막히는 통제와 질서가 그려지는 장면들이 지나가고 나면 그 뒤는 순식간에 읽게 됩니다. 그 숨막히는 장면들과 대비되는 후반의 전개는, 마치 100m달리기를 하는 기분이 들 만큼 템포가 빠르달까요.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저는 몇 가지 반전에 소름과 전율이.
아무튼 파랑 채집가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지요. 시작은, 가족을 잃은 주인공이 고아가 되는 장면입니다. 주인공 "키라"는 열살이 좀 넘은, 사춘기가 되는 여자아이입니다. 키라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요, 마을의 배경은 다소 농경사회같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움막을 짓고, 채집을 하며, 사냥을 다니고, 자수를 놓거나 베틀에서 직조하는 등 수공예를 하는 모습들이 그려집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기억 전달자와 마찬가지로 묘한 통제가 있습니다. 마을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고,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배척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이에 따라 이름의 글자수가 다른데, 1~4음절의 글자를 가집니다. 그래서 이름이 네 음절이면 오래 살아남은 현자를 의미하죠. 마을에는 특이한 역할을 부여받은 이들이 있는데, 공동체 유지를 위해 그들이 존재하는 듯 합니다. 끄는 자, 땅 파는 자, 수호자 등으로 지칭합니다.
주인공 키라는 태생부터 한쪽 다리를 못 쓰는데, 마을 규칙대로라면 버려져야 했던 겁니다. 신생아 때 죽을 뻔했지만, 엄마의 단호한 의지와, 할아버지의 수호장이라는 높은 신분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키라의 엄마는 키라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읽고 있는 제가 위로받았어요.
네가 겪는 고통에 자부심을 가지렴.
그 고통이 너를 다른 사람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 준단다.
아빠는 키라가 태어나기 전 야수에게 죽었고, 이후 엄마까지 병에 걸려 죽자 키라는 혼자 남죠. 키라와 엄마가 살던 움막 터, 그 터를 욕심내며 가지려는 마을 여인들이 키라를 마을에서 추방하려 합니다. 여인들의 대표인 반다라와 키라는 이 다툼으로 결국 수호자 재판까지 가게 됩니다. 판결 결과는, 움막 터는 여인들에게 주고 키라는 "수호자 협의회 건물"로 옮겨 살게 되죠.
키라에게는 친구 "맷"이 있는데요, 작품 전체적으로 비중이 있는 인물입니다. 키라보다 어린 남자아이이고, 습지 출신인데 습지는 마을보다 생존하기 나쁜 환경입니다. 맷은 키라네 움막이 불에 타고 있을 때, 키라 엄마의 유품을 챙겨와 준 고마운 친구인데요. 키라가 맷에게 선물과 우정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 담백하게 마음을 울립니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무언가 특별한 물건.
그래서 받은 사람이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
그게 바로 선물이야.
키라는 수호자 협의회 건물에서 "의상 수선"일을 맡습니다. 묘사를 보면 이곳은 좀 현대적인 느낌이 드는데, 단조로운 오피스텔을 상상하게 됩니다. 농경사회와 대비되어서 좀 놀랐는데, 세계관이 사실은 "인류 문명의 탄생과 멸망이 반복되는 과정들"을 숱하게 겪고, 지금도 어느 문명의 중간이라는 설정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을은 인류의 역사를 노래로 만들어서, "가수"역할을 부여받은 사람이 1년에 한 번 역사를 노래한다고 합니다. 노래의 이름은 "파멸의 노래"인데, 문명의 탄생과 멸망을 그리는 노래가 왜 파멸의 노래일까 궁금합니다. 아무튼, 이 때 가수가 입는 의상을 수선하는 건데요. 가수 의상은 인류 문명을 자수로 표현한 옷이라고 합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천과 자수실이 낡아서, 그걸 수선하는 것이지요. 본래 키라의 엄마가 하던 일이었다고 합니다.
의상에는 다양한 색실이 사용되는데, 자수는 배웠지만 실을 염색하는 건 덜 배운 키라는, 애너밸러 할머니에게 염색을 배우러 다닙니다. 식물의 이름, 꽃잎 등 쓰는 부위, 파종시기, 실을 염색해서 색실로 만드는 과정 등을 배우고 전수받습니다. 다만, 파랑은 구할 수 없는데요. 원료가 되는 식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수 의상 속 파란하늘은 이미 빛이 바래고 있는데.. 애너밸러 할머니는 저 너머(숲 너머?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에는 파랑을 채집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넌지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저 너머의 세상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이죠.
할머니댁에 가는 길은 숲을 지나는데, 키라는 야수를 무서워했으나 할머니는 야수가 없다고 합니다. 키라는 불안하지만 궁금한 마음에, 엄마가 죽은 이후, 자신의 재판 변호인이자 수호자이자 보호자인 자미슨에게 야수의 존재를 묻습니다. 다음 날 키라는 자미슨으로부터 할머니의 부고를 듣는데요.
예상했지만, 사실 애너밸러 할머니는 들판으로 끌려간 것이었고.. 그 모습을 목격한 맷이 이를 키라에게 알려줍니다. 그 후 맷은 갑자기 사라지고, 키라는 협의회 건물의 친구인 조각가 토마와 함께 맷을 찾아 나섭니다. 둘은 맷의 고향인 습지에서 맷의 동생을 만나 맷이 어딘가로 떠났다는 이야길 듣습니다. 결국 맷을 찾지 못하고, 파멸의 노래를 하는 행사날이 됩니다.
노래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맷이 몰래 공연장에 찾아와서 키라에게 선물을 줍니다. 그 선물은 바로 파랑! 이제 키라는 파란색 천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맷은 더 큰 선물을 가져왔는데요. 며칠이 지나고,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키라에게 찾아옵니다. 그는 파란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셔츠는 잘라낸 흔적이 있었죠. 맷이 가져온 파란색 천의 출처였습니다.
남자는 키라의 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사실 그는 키라의 아빠였습니다. 자미슨은, 키라의 아빠가 야수와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는데요. 진실은 이것이었죠. 야수 사냥을 가던 날, 숲에서 자미슨이 키라의 아빠를 공격했는데, 시력을 잃고 죽어가고 있던 때에.. 저 너머 마을의 사람들이 발견하고, 마을로 데려가 살려준겁니다. 이후 그 마을에서 지내다가, 맷의 방문으로 먼 길 왔다고 합니다.
키라의 아빠는 다시 저 너머 마을로 돌아가고, 키라는 할 일이 남았다며 의상 수선을 하겠다고 수호자 협의획 건물에 남습니다. 이후 이야기는 후속작에서 이어질 것 같은데, 키라의 독백과 같은 글귀가 중간에 나옵니다. 인상깊으니까 남길게요.
자신을 속인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닌데!
엄마의 영혼, 현대문명과는 거리가 있는 농경사회의 모습, 수호자 등의 장면이 그려져서 토속신앙이 있는 세계관인 줄 알았습니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고.. 마을 밖으로 나가면 숲에는 야수가 있어서 위험하다며, 야수 사냥을 나서고 목격담을 늘어놓는 문화가 있었죠. 작품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사실 야수는 없었고 마을의 질서 유지와 통제를 위한 장치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이요. 이강백의 희곡, 파수꾼처럼요.
이리 떼는 없고, 흰 구름 뿐.
그렇지만 재밌었습니다. 바쁜 현대 생활에서 잠시 힐링했어요. 다음 작품인 메신저도 다 읽고 나면 리뷰를 올리겠습니다.